top of page
검색

"저에게 파리는 예술가, 자유, 그리고 낭만을 상징했습니다." — 이현정, 예술가

  • 작성자 사진: Léa Baron
    Léa Baron
  • 4일 전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L'artiste coréenne Lee Hyun Joung  dans son atelier parisien / Photo Léa BARON
L'artiste coréenne 이현정의 아들 atelier parisien / 사진 레아 바론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현정 작가는 지난 30여 년간 파리를 삶과 창작의 터전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며, 사색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뇌가 서린 내밀한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루이 앤 색(Louis & Sack) 갤러리를 통해 소개된 그녀의 작품은 최근 '아시아 나우(Asia Now)'와 '프랭탕 아시아티크(Printemps Asiatique)' 등에서 주목받으며 국제적인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파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이현정 작가를 만나보았습니다.


한소리: 작품에 도장이나 서명을 남기는 것은 곧 작품을 떠나보내는 행위라고 하셨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현정: 도장을 찍을 때면 일종의 애틋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저 자신을 위해 탄생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창작의 기쁨, 즉 지극히 개인적인 무언가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다는 그 열망을 소중히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그 시간은 제게 선물과도 같으며, 오롯이 저만의 것이죠. 마치 하늘이 주신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그 점은 인정합니다만—동시에 제게 큰 기쁨을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은 타인과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서명을 하며 작품을 떠나보내게 됩니다.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는 작품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창작의 순간은 온전히 저만의 것이면서도 작품은 결국 타인을 향해 있다는 점은, 분명 다소 모순적인 부분이죠.


작가님의 작업에서 ‘나눔’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나눔이 없다면 삶은 황무지가 되고 말 테니까요. 예전에는 혼자 여행하곤 했지만, 지금은 경험을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나눔을 통해 감정이 확장되고 새롭게 되살아나기 때문이죠.


어떻게 예술과 창작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나요?

한국의 세종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그 후 1995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주얼리 제작을 배웠죠. 직업 자격증(CAP)을 취득하고 회사에서 5년 정도 일한 뒤 독립했습니다.


주얼리 작업을 계속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거든요. 당시 친구와 함께 큰 작업실을 썼는데, 그곳은 화가였던 친구 아버지의 작업실이었어요. 그분께서 남겨주신 재료가 많았던 덕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파리에 있는 이현정 작가의 작업실 / 사진: 레아 바롱
파리에 있는 이현정 작가의 작업실 / 사진: 레아 바롱

22살에 왜 프랑스를 선택하셨나요?

당시 한국의 성 불평등 문제가 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 문제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떠나는 길을 택했죠. 어쩌면 다소 순진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제게 파리는 예술가, 자유, 그리고 낭만을 상징하는 곳이었거든요.


프랑스어 자체도 정말 좋아했어요. 배우기는 까다로웠지만, 그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졌거든요.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라디오를 자주 듣습니다.


작업의 토대가 되는 '한지'를 다루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2011년이었어요. 어머니께서 크게 편찮으셨던 때였죠.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고, 주얼리 제작에 필요한 정교한 손놀림도 되찾기 어려웠으니까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잠시 일을 쉬고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셨어요.


한지는 닥나무(dak) 섬유로 만든 한국의 전통 종이입니다. 뛰어난 내구성과 보존성으로 유명해서 수백 년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죠. 통기성과 유연성이 뛰어나고 천연 항균 기능까지 갖춘 한지는 서예나 회화 같은 예술 분야는 물론, 인테리어와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그때 한지가 다시 당신의 삶으로 들어온 건가요?

네. 한지는 늘 제 일상 속에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글씨를 쓰는 용도뿐만 아니라 바닥, 벽, 창문을 마감하는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쓰이거든요. 그렇게 바른 뒤에는 옻칠이나 기름칠을 해서 마무리하기도 했죠. 학교에서도 한지로 여러 물건을 만들었는데, 특히 종이죽을 이용해 가면을 만들던 기억이 나네요.


직접 공책을 만들어 쓰기도 했어요. 종이의 감촉이 고국과 저를 이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고유 문화와 멀리 떨어진 프랑스에 살면서, 한지는 제게 고국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연결 고리가 되어줍니다.


종이를 찢고 물에 불려 새로운 소재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다시 발견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한지는 흡수력이 매우 뛰어나서, 매끄러운 종이와 달리 물을 머금으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거든요.


이현정은 직접 만든 한지에 먹으로 작업한다. / 사진: 레아 바롱
이현정은 직접 만든 한지에 먹으로 작업한다. / 사진: 레아 바롱

왜 직접 종이를 만드시나요?

저에게는 종이 자체가 이미 예술 작품입니다. 창작 과정은 보통 최종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지만, 저는 정반대로 작업합니다. 형태는 우연에서 비롯되고, 바로 그 점이 저에게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이 재료에 깊은 매력을 느끼며, 이를 통해 여전히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잉크(묵)와 안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현정 작가가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붓과 먹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이현정 작가가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붓과 먹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창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간단한 스케치를 몇 점 해보긴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확정해 두는 방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로 종이 위에 직접 직관적으로 작업하는 편이죠. 잉크는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꽤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사실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도 많지만, 저는 언제나 그것들을 끝까지 완성해 냅니다.


그런 '실패작'들은 어떻게 하시나요?

제 삶의 일부이기에 버리지 않고 간직합니다. 한 해가 마무리될 때면 그것들을 잘라내고 다시 조합하여 *Mémoire vivante*(살아있는 기억)라는 제목의 새로운 작품을 만듭니다. 결국 이 작품은 제 감정과 삶의 순간들, 그리고 지나온 한 해를 담은 기록이 되는 셈이죠.


한국의 보자기 예술을 재해석한 이현정 작가의 작품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한국의 보자기 예술을 재해석한 이현정 작가의 작품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그것이 바로 '보자기'라고 불리는 것인가요?

본래 '보자기'는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붙여 만든 한국의 전통 직물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물건입니다. 귀한 물건을 감싸거나 운반할 때 사용되었으며, 각 조각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 작업 또한 '기억을 이어간다'는 이와 같은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2026년 6월에 열린 제9회 '파리 아시아의 봄(Printemps Asiatique Paris)' 행사에서 제 보자기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보자기는 물건을 감싸거나 보호하고 운반하는 데 쓰이는 한국의 전통 천(주로 정사각형 모양)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은 조선 시대(1392~1910) 초기의 것으로, 불교와 관련이 깊으며 특히 불경을 감싸거나 덮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보자기(조각보)의 모습.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보자기(조각보)의 모습.

보자기는 실용적인 기능을 넘어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결혼이나 약혼 때 새 천으로 만든 보자기를 선물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그 물건과 받는 사람 모두를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오늘날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으며, 여전히 장인 정신과 변치 않는 미학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때로는 제가 정확히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저 선과 곡선을 통해 종이 위에 감정을 담아낼 뿐이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산, 틈새, 파도 등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또한 이 작업은 고도의 정밀함과 반복적인 과정을 필요로 하며,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가끔 한국 드라마를 틀어놓고 작업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작업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이자 감정의 분출이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게 해주는 일종의 명상과도 같습니다. 외국어로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제 예술은 치유의 수단이자 저만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아시아 나우 파리(2025년 10월)에서 루이 앤 색(Louis & Sack) 갤러리가 선보인 이현정의 트립티크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아시아 나우 파리(2025년 10월)에서 루이 앤 색(Louis & Sack) 갤러리가 선보인 이현정의 트립티크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프랑스에 정착하는 과정은 실제로 어떠했나요?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프랑스인과 결혼했기에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격도 있었고, 언어를 익히는 어려움도 있었죠. 또한 오랫동안 아이들과 가족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다가 뒤늦게야 제 자신에게 다시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오늘날 제 그림에도 배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안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고국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저는 스스로를 깊이 한국인이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가면 때로는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사회적 맥락이나 미묘한 뉘앙스를 더 이상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한국 드라마를 보긴 하지만, 그건 현실과는 다르니까요.


그럼에도 교육이나 가족 관계 같은 특정 가치관에 있어서는 여전히 고국의 문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표현한 이현정의 작품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자신의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표현한 이현정의 작품 / 사진: 레아 바롱(Léa Baron)

자녀들에게도 이 문화를 물려주셨나요?

한때는 제 문화와 거리를 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7년 동안 한국어 학교에도 보냈죠. 모두에게 힘든 과정이었어요.


어느 날 아들이 학교 앞에서 한국어로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큰 상처를 받았고, 저에 대한 거부라고 느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산을 물려주는 일이 제게는 정말 중요했으니까요. 지금은 아이들도 그 점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어요.



작년에 루이비통 덕분에 고국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2019년부터 교육 지원 프로젝트를 펼치는 단체인 '앙팡 뒤 메콩(Enfants du Mékong)'과 함께 홍콩에서 열리는 연례 전시회에 참여해 왔어요. 그러다 한 컬렉터가 제 작품을 보게 된 거죠.


그 컬렉터는 서울 신세계백화점에 새로 들어설 루이비통 매장을 꾸밀 계획을 세우던 LVMH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임원과 동행하고 있었어요.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제가 선정되었고, 가로 11미터, 세로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갤러리라는 공간을 벗어나 그런 규모와 환경에서, 무엇보다 한국에서 작업하는 것은 제게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국인 예술가로서 프랑스 기업의 한국 내 프로젝트를 위해 작품을 의뢰받았다는 사실은 큰 상징적 의미가 있었죠. 마치 제 여정이 비로소 하나로 완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현정 작가는 2024년 파리에서 1991년 8월 22일 권선철, 이배, 정재규, 곽수영 등 네 명의 작가가 설립한 소나무 작가협회에 합류했습니다. 현재 협회에는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비디오, 도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4명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소나무 작가협회는 수십 년 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의 주요 만남의 장이자 창작 허브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이시레물리노에 공동 작업실 겸 전시 공간을 운영했으나 2001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는 전시 기획 및 2008년에 제정한 '소나무상'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가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프랑스에서의 삶이 저에게 잘 맞거든요. 아이들도 다 컸고, 마음도 한결 자유로워졌죠. 시간을 내어 빛과 정원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요. 지금 저는 평온합니다. 제 일과 삶 모두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다음 발행물을 받아보세요!

© 2026 Hansori.fr - Tous droits réservés.

bottom of page